30대 직장인의 돈에 대한 혼잣말
회사 생활 10년 차에 은퇴하는 게 꿈이었던 직장인이 10년 차 돼서 다시 은퇴를 꿈꾸게 된 이야기
'철없는 소리 하네'하던 그 눈빛
몇 년 전, 회사에서 브랜딩에 대한 교육이 있었다. 2명씩 무작위로 짝을 지어 미래에 꿈꾸는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이 있었다. 잘 모르는 타 부서 차장님과 한 팀이 됐다. 잘 모르는 분이라서 자세히 얘기하긴 그렇고, 그래도 뭐라도 해야겠기에 내 오랜 회사 생활의 목표를 깠다.
"회사 생활 10년 하면 은퇴하고 싶어요."
모니터 화면 속에 비치는 그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내가 이 교육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지 않다고 여긴 듯, 찰나였지만 그의 얼굴에 황당하다는 표정이 지나갔다. 마흔이 넘으면 그런 생각보다는 가족을 부양해야겠기에 회사에 오래 남을 생각을 하게 된다며, 그는 차분하게 내게 자신은 회사에 오래 남고 싶다고 말했다. 당연히 이해가 되는 현실적인 이야기고, 가장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다. 그리고 그가 날 두고 '철없는 소리 한다'라고 생각한들 이해한다. 나를 모르니까.
왜 10년째에 은퇴를 꿈꿨는지는 진짜 간단하다.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뿐. 그냥 10년이라는 시간이 굉장히 길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짧은 시간이라고 느껴져서 그랬다. 일평생을 회사 일만 해보면 재미가 없지 않을까, 10년 단위로 하는 일을 바꾸고 싶다는 단순하고 맹랑하며 멋져 보이는 생각이었다.
딱 그 정도다. 내가 그렇게 뭔가 고민하고 생각을 해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치밀한 사람은 아니다.
은퇴? 퇴근도 못 했다.
올해가 회사 생활 10년째 되는 해다. 은퇴는커녕 오늘의 퇴근도 요원하다.
20대 초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들어온 회사에서 10년이면 '은퇴'하고 싶었다. '은퇴'라는 큰 단어를 쓰긴 했지만 진짜 일을 그만둔다는 의미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일의 중단보단 정체성 찾기 쪽이 더 옳다. 그 무렵에 하고 다니던 말이 '주업의 부업화'였는데 주업을 부업으로 하고 부업을 주업으로 할 만큼 열정을 쏟을 만한 일을 찾아 그걸 갖고 은퇴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회사 일이 끝난 후 딴짓을 참 많이 했다. 공예도 하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그 덕분에 지금은 이것저것 곧잘 하는 사람이 됐지만 단 한 푼의 소득도 벌지 못했다. 진득이 소득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력했다면 벌 수도 있었겠지만, 난 열정이 빠르게 끓어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 같은 사람이다. 계획이 있어서 그러고 다닌 게 아니었으니 어떻게 보면 정체성 찾기를 빙자한 놀기였던 것이다. 그래도 그런 시간이 후회가 되진 않는다. 돈을 들인 만큼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게 된 값진 시간들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수요일, 사무실에서의 아침, 오늘도 마음속에는 언젠가의 퇴사와 은퇴를 생각한다. 20대의 나와 다른 게 있다면 30대에는 야근이 많아졌다. "10년 동안 다른 일을 찾아서 은퇴해야지"가 아니라 "회사 생활 그만하고 싶으니까 빨리 다른 일을 찾아야지"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런데 다른 일을 찾으려고 보니 예전보다 시간이 없어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일을 하기에 앞서 투자금과 효율을 생각하게 된다. 지난 10년 동안 했던 회사밖 딴짓들에서 수입을 만들려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동안의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몇 년이 걸리려나 되긴 하려나, 잘 모르겠다.
30대의 은퇴 관념에는 돈이 들어와 앉았다. 그렇게 생각이 바뀐 이유는 내가 현실에 쩌들어서이기도 하고 최근의 몇 해 동안 자의 내지는 타의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분들의 마지막을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제 갑작스럽게 퇴사를 하게 될지도 모르고 계획을 했다고 한들 갖고 있는 재력에 따라 퇴사를 맞이하는 태도가 천차만별이었다. 내가 봤던 안 좋은 예시처럼 되고 싶지 않다.
이제는 현실적으로 은퇴를 생각하게 보려고 한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정체성 찾기는 잠깐 재껴두고 있는 돈부터 굴리기로 했다. 나름 학교에서 공부도 잘했는데 이렇게까지 금융 문맹인 줄 몰랐다.
무엇보다 은퇴라는 것에 이렇게 엄청난 준비가 필요한지 몰랐다.